전시

참여작가

정연두 Jung Yeondoo

  • 〈싱코페이션 #5〉, 2025, 3채널 4K 디지털 비디오와 1채널 항아리 조명 설치, 컬러, 사운드, 혼합 매체, 17분 21초, 가변 크기.
  • 〈싱코페이션 #5를 위한 연기 드로잉〉, 2025, 수채화 종이에 그을음, 42 × 30 cm.

정연두의 〈싱코페이션 #5〉는 강릉 일대에서 촬영한 다층적인 장면들, 피아노 듀오 공연 실황, 강릉단오제에 얽힌 기록들을 교차하며 자연과 재난, 전통과 기도, 소리와 침묵이 맞물리는 지점을 보여주는 3채널 영상과 단채널의 항아리 조명 설치 작품이다. 작품 제목 ‘싱코페이션’은 음악 용어로 ‘엇박’ 또는 ‘당김음’을 뜻하며 규칙적인 리듬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어긋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동시에 고대 그리스어 어원에서는 ‘탈락’, ‘생략’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연두는 이러한 언어적 기원을 바탕으로 들리지 않는 소리, 보이지 않는 움직임, 예측되지 않는 사건들을 통해 규칙에서 벗어난 일들과 빠진 요소들을 주목한다. 시간성과 의미가 중첩된 이미지들이 병렬적으로 배치된 이 영상에서 ‘싱코페이션’은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형식적·정서적 구조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역할을 한다.

작품의 한 축은 작곡가 임지선이 작곡한 〈디아스포라〉 연주 실황이다. 두 명의 연주자가 마주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이 중 한 대는 현을 제거해 소리를 내지 못한다. 같은 손의 움직임에도 한 피아노에서는 소리가 울리고 다른 하나는 침묵한다. 이처럼 비대칭적인 대화 구조는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존재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작가는 이 침묵을 통해 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 말할 수 없는 기억, 침묵을 강요당한 역사 등을 시사하며 관람객이 발화되지 않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정연두는 피아노 조율에 쓰이는 ‘보이싱 Voicing’ 개념을 주목한다. 해머의 강도를 조절해 음색을 조정하는 이 기술을 제거한 피아노는 ‘목소리 voice’의 부재를 상징한다. 이 피아노의 침묵은 타건의 리듬을 통해 때로는 심장 박동처럼 울리고, 이는 전시공간에 설치된 항아리의 빛으로 이어져 발發한다. 정연두는 들리지 않는 것이 결국 소리로 전환되는 발화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 ‘두드림’이라는 행위를 설치로 확장한다.

작품 속 주요 장면들은 강릉의 지역성과 강릉단오제의 시간성에 기반한다. 강릉은 해마다 5월 말에서 6월 초가 되면 단오제를 중심으로 공동체적 제의와 전통 예술을 펼쳐내는 도시다. 정연두는 전야제, 굿판, 모내기 직후 들판, 신주빚기 행사 등을 촬영해 강릉이라는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상징적 장면을 포착한다. 단오제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지역 제의로, 굿, 탈춤, 씨름 등 다양한 행사를 포함한 공동체의 염원이 집중된 장이다. 작가는 이 전통 의례의 여러 장면을 시각화해 지역 축제를 초월한 ‘염원의 시간성’을 구성한다.

특히 작가가 주목한 신주 빚기 의례는 단오제 기간에 공동체가 각자의 염원을 담은 쌀을 모아 관아에 보내고 그 누룩으로 술을 빚어 제례에 올리는 과정을 담고 있다. 신주를 빚는 행위는 자연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공동체적 염원의 표출이자 시간이 축적되는 행위로 해석된다. 작가는 이 신주를 담는 항아리를 설치로 전환해 발효의 시간성과 침묵 속 이야기를 담은 공간으로 제시한다. 항아리는 발효의 장소이자 시간이 축적되는 용기로 작동하며, 앞서 언급한 대로 타건과 두드림을 빛으로 전환하는 매개체가 된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적 키워드는 ‘손’이다. 피아노를 두드리는 손, 논에서 모내기하는 손, 쌀을 씻는 손, 항아리에 누룩을 담는 손, 굿판에서 기도를 올리는 무녀의 손까지, 이 손들은 각각 다른 시간과 맥락에 속해 있지만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생성하거나 매만지는 행위로 반복된다. 정연두는 이 손의 반복을 보여주면서 소리와 기도, 생명과 소멸, 기억과 염원이 하나의 동작과 리듬 안에서 이어짐을 시각화한다.

특히 어루만짐과 두드림이라는 비언어적 행위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피아노, 항아리 속 발효 과정, 기도를 담은 제의와 연결된다. 작가는 피아노 건반의 흑백 구성을 산불 이후 남은 나무와 대비시키고, 균이 발효를 통해 술로 전환되는 과정과 피아노 목소리의 부재를 구조적으로 병치한다.

또 다른 중요한 맥락은 반복되는 산불이다. 작가는 산불 피해지에서 자란 묘목, 산자락을 가르는 바람, 소방차의 경광등 등을 촬영해 이 불가항력적 사건을 기록한다. 싱코페이션이 리듬을 어긋나게 만드는 행위이듯 산불은 자연과 공동체의 리듬을 중단시키는 사건이다. 하지만 이 재난 이후 다시 밭을 갈고, 쌀을 모으고, 술을 빚고, 기도하는 반복 행위는 그 리듬을 회복하려는 염원의 리듬이 된다. 작품은 이처럼 자연의 불규칙성과 공동체의 반응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예측 불가능한 현실과 그에 대한 태도를 다룬다.

정연두의 기존 작품처럼 〈싱코페이션 #5〉 역시 말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세계의 질서를 다룬다. 이 작품이 다루는 ‘디아스포라’는 공간의 이동이나 역사적 이주의 직접적인 표상이라기보다는 발화되지 못한 상태, 목소리의 부재, 의미의 지연과 같은 간접적인 층위에서 제시된다. 소리는 침묵으로 돌아가고, 발효는 부패와 구분되지 않는 경계에서 작동하며, 기도는 응답 없는 반복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그는 이를 하나의 서사로 수렴하지 않고 병렬적 구조와 리듬의 간섭을 통해 관람객이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마주하게끔 한다. 이 작품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무엇이 침묵했는지, 혹은 말할 수 없었는지를 묻는다. 들리지 않는 피아노, 누구도 말하지 않는 역사와 태울 수밖에 없는 기도, 혹은 다시 빚어지는 술 등 어긋난 요소들이 단절되지 않은 채 하나로 엮인다. 바로 그것이 정연두가 말하고자 하는 ‘싱코페이션’이다.

정연두(b.1969)는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 시간 기반 매체를 통해 기억과 역사, 서사를 고찰해온 작가로 이질적인 문화 환경을 접합하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작가는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인물을 연결하거나 다큐멘터리와 픽션, 개인과 사회의 층위를 접속시키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하며, 시와 음악, 연극의 언어를 경유해 현실을 새롭게 조망하는 예술적 태도를 드러낸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정연두는 전통 의례, 재난, 지역 공동체의 반복 행위를 통해 발화되지 못한 역사와 염원을 드러내는 커미션 작품 〈싱코페이션 #5〉를 선보였다. 작가는 강릉 단오제의 풍경을 통해 인간의 염원과 불가항력적인 자연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들리지 않는 피아노, 침묵과 리듬, 발효와 기도라는 제의적 행위들을 병치했다.

작가의 주요 개인전으로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백년 여행기》(국립현대미술관, 2023), 《여기와 저기 사이》(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0), 《지금, 여기》(페리지 갤러리, 2019), 《夕立 – Between Day & Night》(코마고메 소코, 도쿄, 2018), 《Yeondoo Jung: Behind the Scenes》(노턴미술관, 웨스트 팜비치, 2017) 등이 있으며, 주요 단체전으로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몰타 기사단 수도원, 2024), 《The Shape of Time: Korean Art after 1989》(필라델피아 미술관, 2023), 《한국현대미술: 태평양을 건너서》(주멕시코 한국문화원, 폴랑코, 2022)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momorash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