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참여작가

이양희 Yanghee Lee

  • 〈이양희 입춤〉, 2020, 2025,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3분 3초.
  • 〈이양희 산조〉, 2025, 라이브 퍼포먼스, 약 21분.

이양희의 작업은 무용의 형식과 계보에 대한 비판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초기 교육과정에서 ‘한국 전통 무용’이라는 이름 아래 전통과 창작이 혼재된 형태의 춤을 경험했으나 이후 자신이 습득한 동작이 단순한 전승을 넘어서는 근대 무대 양식을 바탕으로 구성된 창작물임을 자각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특정한 무용 형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계보화되는지를 분석하며 한국 현대무용의 기원 중 하나인 신무용1의 구조와 계열에 주목하게 됐다.

한국의 신무용은 최승희가 창안한 형식으로 다양한 문화 요소를 혼합해 무대를 구성하고 이를 기록 가능한 형태로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이양희는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구조 속에서 춤을 익혔고 이를 통해 형식화된 전통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체감했다. 그는 전통이라는 명칭이 국가 중심적 정체성과 결합되며 고정화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고 춤을 보다 복합적인 역사적 지층 위에서 재조명한다. 그는 무대 형식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갖는다. 전통적인 극장 구조가 무용수와 관객사이 위계적 경계를 만드는 것에 반해 그는 관객과 함께 교감하는 공연을 실험하며 춤의 일상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시도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춤이 비가시적이고 어렵게 인식되는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를 전환하고자 다양한 실험과 워크숍을 지속해 왔다. 한국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화를 체득하고 뉴욕 댄스 커뮤니티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며 여러 분야의 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양희의 이러한 시선은 강릉단오제를 관찰하면서 더욱 구체화된다. 그는 단오제에서 굿이 형식화되며 무당의 자율성이 제한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전통이 살아 있는 문화가 아니라 고정된 구조로 전환되는 과정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갖게 된다. 이 질문은 이후 ⟨이양희 산조⟩라는 작품으로 이어진다. 그는 이번 작업에서 기존에 지향한 열린 구조가 아닌 오랜 시간 몸에 축적된 기술을 정제하고 구성해 무대로 옮기는 데 집중했다. 춤에는 악보라는 형식이 없으므로 기술은 무용수의 몸을 통해서만 전승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구현 가능한 움직임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 작업을 구상했다.

⟨이양희 산조⟩는 전통 산조2 음악의 느림에서 빠름으로 전개되는 구조를 무용 안에 적용한 작업이다. 산조는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전개되며 각각의 구간은 ‘단(段)’이라 불리는 독립된 리듬 단위로 구성된다. 이양희는 이러한 구조를 춤의 흐름에 대응시키고 각 동작을 단위처럼 배열해 점층적으로 밀도를 높여간다.

수십 년 동안 신체 기억으로만 구현 가능한 고유한 기술을 그 안에 담아내 무대 위에서 실현하는 것이 곧 기록이고 전승이다. 그는 이 작품 안에 과거의 춤 ‘입춤3’을 병치했다. 예원학교 재학 중 촬영한 비디오는 현재까지도 교재로 쓰이고 있으나 그 안의 기술적 뉘앙스와 강약 조절은 오직 본인만이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그 춤을 지금의 몸으로 다시 구현하고 퍼포먼스 이후에 그 영상을 재생하면서 차이를 무대에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이양희는 춤이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무용수의 훈련 환경과 사회적 조건이 달라진 현시점에서 일부 기술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이를 부정하지 않되 자신이 익힌 기술을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 남기기 위한 책임을 느낀다. ⟨이양희 산조⟩의 수행은 그런 실천의 첫걸음이자 기록이기도 하다. 그는 이후 ‘입춤 1, 2, 3’이나 ‘산조’의 확장 작업을 통해 기술의 전수와 기록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춤이란 무엇이며 전통은 어떻게 계승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공연예술에서 관객과 교감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설계한다. 그는 공연이란 관객과 무용수가 각자의 시간 속에 머물다가도 특정한 순간 교차하는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관객이 공연 중 집중을 잃거나 다른 차원에 머무르다 다시 돌아오는 경험 역시 공연의 일부이며 이는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심리적 이탈과 복귀를 의미한다. 그는 관객의 시간과 퍼포머가 만들어내는 시간이 맞물리는 순간을 설계하기 위해 움직임 하나까지 촘촘하게 구성한다. 작가에게 관객의 시간은 기억이 중첩된 총체적 경험이다. 그는 관객의 감상 방식을 통제하기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유도하며 관객이 퍼포먼스와 다시 맞물리는 그 순간을 공연의 본질로 여긴다. 그는 이런 순간이 많을수록 공연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고 믿는다. 이렇듯 이양희는 오랜 시간 형성하고 축적한 실천과 경험에서 퍼포머로서 자신의 예술에 대한 확신을 찾는다. 스스로가 왜 춤을 지속해야 하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은 그것을 억지로 설득하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자 한다.

이양희(b.1976)는 공연예술의 언어를 다루는 예술가로, 일시적 극장을 만들거나 전시의 형태로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신무용’으로 일컬어지는 한국 전통무용으로 출발해 1990년대 한국에 부흥했던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화를 주체적으로 향유하며, ‘전통과 동시대 예술’이라는 혼종과 미지의 영역을 자기 몸의 역사로 관통한다. 그는 한국 춤사위의 속성과 이양희 고유의 원형을 깊이 탐색하며, 춤 자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신체, 쾌락, 형식(form)-을 작업의 주제로 다룬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작가는 신무용에서 파생된 산조와 입춤을 모티브로 한 커미션 작품 〈이양희 산조〉를 발표하고 〈이양희 입춤〉을 전시했다. 작가는 자신의 과거 영상을 현재의 공연과 겹쳐 구성한 독창적인 무대 언어를 제안했고 매주 공연과 함께 관객과 직접 만나는 워크숍 〈매스〉를 병행했다. 그는 서구 중심의 세계관과 일본 주도의 근대화 과정에서 태어난 ‘전통’의 관습과 위계를 다각도로 성찰하며 새로운 총체예술, “춤을 통한 회합”을 꿈꾼다.

작가의 주요 개인전으로는 《축과 발》(더페이지갤러리, 2024), 《IN》(휘슬, 2024), 《헤일》(d/p, 2020) 등이 있으며, 주요 단체전으로는 2024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부산현대미술관, 2024), 《빅브라더 블록체인》(백남준아트센터, 2024) 등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쉬머링〉, 〈어피셔나도〉, 〈트윅스트〉, 〈헤일〉, 〈게잠트쿤스트벨크〉 등이 있다. 그는 뉴욕 라이브아츠(2011)와 무브먼트 리서치(2014–2016) 상주 예술가로 활동했고 아시아문화위원회 펠로십(2016)에 선정되었다.

인스타그램: @leeyanghee_choreographic

  1. 신무용은 1920년대부터 약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성행한 근대적 형태의 창작춤이다. 1926년 처음 등장한 이 용어는 전통춤과 구분되는 새로운 예술 무용을 가리키며 무대 공연을 위한 창작 중심의 무용 형식을 뜻한다. 이 시기의 춤은 전통춤을 재구성하거나 서구 무용 양식을 수용한 방식 또는 새로운 미의식에 따라 창안된 움직임을 통해 전개됐다. 발레나 모던댄스 같은 외국 무용과의 절충, 한국 고유의 정서를 살린 창작춤 등으로 유형화할 수 있으며 기존의 형식이나 내용에서 벗어난 자율성과 독자성을 강조했다. 한국 근대 무용의 기틀을 닦은 신무용은 예술무용이라는 개념을 한국 사회에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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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산조는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대표적인 기악 독주 음악장르다. 진양조에서 시작해 점차 빠른 장단으로 진행되는 구조로 음악적 논리와 즉흥성이 조화를 이루는 형식이다. 산조는 원래 김창조가 창안한 가야금산조에서 출발, 이후 거문고, 대금, 해금, 아쟁 등으로 확장됐으며 장구 반주와 함께 연주된다. 이 음악은 연주자의 기량과 개성을 중시하며 명인별로 다양한 유파가 존재한다. 각각의 산조는 악기 특성과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고유한 가락과 흐름을 지니며 20세기 이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체계적인 전승과 보존이 이루어진다. 산조는 한국 음악의 미학과 전통 즉흥성의 정수를 보여주는 예술로 평가받는다. 산조 음악을 활용한 무용은 전통춤에서 중요한 레퍼토리 중 하나로 전통 무용가들이 산조춤을 주요 레퍼토리로 삼는 경우가 많다. 즉흥성, 정중동의 미학, 개인적 해석이 강조되고 반주와 춤이 서로 호흡하면서 느리고 빠르게 전개되는 특징이 있어 각자 스타일대로 표현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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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입춤은 ‘서서 추는 춤’을 의미하며 한국 전통춤의 기본이자 출발점에 해당한다. 별도의 복장이나 무대 없이도 출 수 있는 간결한 형식으로, 손놀림, 발 디딤, 몸 굴림 등 기본기와 함께 즉흥성이 강하게 발현된다. 구음(입으로 장단을 흥얼거리는 소리)과 함께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대중적 춤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입춤은 지역과 명인에 따라 다양한 유파로 전승됐다. 대표적으로 경기·충청권의 김숙자류, 전라도의 이매방류, 경상도의 권명화·최희선류 등이 있으며 살풀이춤, 즉흥무, 수건춤 등으로도 불린다. 각 지역과 무용인의 미적 감각에 따라 춤사위가 달라지는데 그만큼 전통춤의 다양성과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입춤은 춤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멋, 흥, 신명을 담아내는 전통춤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