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참여작가

홍이현숙 Hong Lee Hyunsook

  •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강릉〉, 2025,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3분 3초.

홍이현숙은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를 결합해 신체성과 사회 안의 다양한 서사를 파고든다. 이번 신작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강릉〉은 강릉 임영관 삼문, 칠사당, 중대청 등 유서 깊은 건축물에서 진행한 타악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건축물들을 강릉을 지켜온 비인간적 신체로 간주하고 그 표면을 두드리는 행위를 통해 잠재된 호흡과 기억을 깨운다. 이때 자연, 회복, 생명의 감각이 중첩되며 제의적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신체 수행, 제의성이라는 작가의 지속적 관심이 응축된 결과다. 여기에서 퍼포먼스는 공간, 몸, 자연을 감응의 매개로 삼는 제의로 구성된다.

강릉 임영관 삼문과 칠사당은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신성한 존재로 나타나며 이를 두드리는 행위는 이들을 깨우고 소통하려는 일종의 의례다. 작가는 건축물에 내재한 신성과 시간성에 반응하며 인간과 비인간 사이 새로운 관계를 호출한다. 이러한 방식은 동해안 별신굿의 전통과도 맞닿는다. 강릉은 무속적 전통이 깊게 뿌리내린 지역으로, 건축과 자연에 신성을 부여하고 조화를 기원하는 제의 문화가 오랫동안 전승돼 왔다. 작가는 별신굿의 형식을 직접 차용하지 않으면서도 굿의 리듬과 몸짓을 연상시키는 행위를 통해 장소에 감응을 불어넣는다.

작가는 강릉대도호부 관아 안 중대청을 악기이자 몸으로 바라보고 이 공간을 두드려 다시 울리고 또 한 번 깨우는 방식으로 퍼포먼스를 구성했다. 강릉 동해안 별신굿에서 무녀가 굿을 시작하기 전 타악기를 연주해 공간을 깨우는 전통에서 착안한 것이다. 진동의 파동은 멀리 있는 존재에게 이곳에서 무언가 시작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징, 장구, 꽹과리 등 연주하는 악기에 따라 ‘깨우는 존재’가 달라지기 때문에 두드리는 행위는 단순한 소리를 넘어 전통 굿에서 중요한 ‘깨움’의 의미를 뜻한다.

작가는 이러한 굿의 원리를 바탕으로 칠사당과 강릉 임영관 삼문 같은 고건축을 ‘신성한 몸’으로 바라보고 인간화된 신체로 전환한다. 문풍지, 기둥, 벽, 바닥 같은 구조의 세부는 인체의 장기처럼 두드리는 자의 리듬에 반응하고 바람, 나무, 바다, 산 역시 이 제의에 호응한다. 이때 건축은 배경이 아닌 주체로서 퍼포먼스에 참여하고 공간은 ‘두드림’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따라 거대한 유기체처럼 깨어난다. 퍼포먼스는 인간과 비인간이 공명하는 장으로 확장된다.

작품에는 두 명의 퍼포머가 등장한다. 한 명은 공간을 두드리는 자로, 제사장이나 무당처럼 몸을 매개로 건축의 기운을 환기한다. 그는 신체와 건축의 표면을 직접 타격하며 리듬을 만든다. 다른 한 명은 제물이 되는 자로, 스스로를 내어주는 몸짓을 통해 긴장을 감내한다. 이 두 인물은 주체와 객체, 주술자와 제물, 사람과 공간의 역할을 넘나들며 상호교환적 구조를 형성한다. 처용과 심청이라는 두 고전 인물이 각각 두드리는 자와 제물이 되는 자의 상징적 기원처럼 기능한다는 점에서 이 퍼포먼스는 한국적 신화의 리듬과 몸짓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례다.

또한 이 퍼포먼스의 구조는 재난과 맞서는 한국 신화 속 이야기들과도 겹쳐진다. 두드리는 자는 역신을 쫓아낸 처용처럼 제의의 리듬을 통해 불순한 기운을 물리치고 제물이 되는 자는 심청처럼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짐으로써 희생을 실현한다. 이는 전통의 차용을 넘어 강릉이라는 장소에서 실질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재난의 위협, 예컨대 산불처럼 강릉의 4대 봉우리를 위협하는 자연의 힘에 대한 반응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두드리는 행위는 이 오래된 건축물에 현재의 신체를 개입시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을 만들어낸다. 행위가 고조됨에 따라 건물과 몸의 떨림은 중첩되고 공간에 축적된 기억은 신체적 지각을 거쳐 되살아난다. 이러한 떨림은 강릉을 병풍처럼 감싸는 네 봉우리인 대관령, 노추산, 계방산, 오대산의 신성神性과도 교감한다. 이 산들은 지역을 수호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왔으며 퍼포먼스를 관통하는 ‘두드림’은 그 생기와 진동을 불러내는 매개가 된다. 동시에 그 산맥을 위협하는 산불이라는 역신적 재난에 대한 정화와 방책防柵의 의례로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제의 구조는 색채에서도 발현된다. 작품 전반에서 파란색은 감정적 중심축이자 상징적 장치로 기능한다. 제물과 물의 색은 물론, 드론 촬영 중 우연히 포착된 파란 구덩이까지, 희생, 정화, 치유를 상징하며 영상의 분위기와 정서를 구성한다. 마치 심청이 빠져든 바다의 이미지처럼 푸른빛은 제의의 장을 열어주는 실마리이자 장소의 근원적 힘을 끌어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처럼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강릉〉은 건축과 신체, 제의와 신화를 겹쳐 놓음으로써 장소의 기억을 되살리는 의례적 수행이다. 인간과 비인간, 재난과 정화가 교차하는 층위 속에서 작가는 ‘두드림’이라는 원초적 행위를 통해 강릉 땅에 깃든 보이지 않는 존재와 접촉하려는 시도를 수행한다.

홍이현숙(b.1958)은 일상적 수행과 수련을 통해 추상을 탐구하며, 인간 중심의 존재 방식에서 벗어나 탈중심화를 시도해왔다. 작가는 냄새, 소리, 진동 같은 감각을 넘어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초월한 공감각적 장소를 형성하고자 하며,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존재하고 넘나드는 공간을 목격하는 것을 작업의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그는 조각을 전공한 후 영상, 설치, 퍼포먼스,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을 확장해 왔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홍이현숙은 강릉 임영관 삼문, 칠사당, 중대청 등 오랜 건물과 나무, 산, 바다 등이 퍼포머의 두드림에 반응하며 서로 엉켜 움직임을 이루는 커미션 작품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강릉〉을 선보인다. 여기서 ‘두드림’은 단순한 신체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제의적 행위로 작용하며, 공간과 사물, 존재들을 연결하는 리듬이자 기도이자 소환이다.

작가의 주요 개인전으로는 《12m 아래, 종들의 스펙타클》(코리아나 미술관, 2022), 《휭,추-푸》(아르코미술관, 2021), 《한낮의 승가사》(공간 일리, 2019), 《폐경의례》(복합문화공간 에무, 2012) 등이 있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2024 타이틀 매치: 홍이현숙 vs. 염지혜 《돌과 밤》(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4), 2024 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부산현대미술관, 2024),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국립현대미술관, 2024),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무각사, 2023), 제1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강/릉/연/구》(서부시장 예집, 2022)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hong_hyun_s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