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기획의 글
디렉터 박소희
음력 사월 보름에 국사서낭신을 모시고 내려오면서 부르는 소리가 영산홍이야.
“이히야, 에헤.
에헤야 에디야
얼싸 지화자 영산홍.”1
바람 소리와 같이 쏴아하는 소리가 나면서 집채 같은 호랑기가 나타나더래 그러다니 그 쳐녀를 들쳐업고 갔대. 이래 딸이 없어졌단 말이야.2
“강원도는 바닷가에 있는 9군이 단대령(홀로 높은 고개) 동쪽에 있기 때문에 영동이라 한다. 단대령은 대관령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강원도를 관동이라고도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역사 속 대관령은 백두산 이남으로 가장 높은 고개였다는 것이다.3
안축(安軸)의 기문에, “먼 데 있는 물을 창해가 넓고 크며, 먼 데 있는 산은 골짝이 천 겹이다.” 하였다. 4
대관령(大關嶺) 부 서쪽 45리에 있으며, 이 주(州)의 진산이다. 여진(女眞) 지역인 장백산(長白山)에서 산맥이 구불구불 비틀비틀, 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동해 바닷가를 차지한 것이 몇 곳인지 모르나, 이 영(嶺)이 가장 높다. 5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은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의 세 번째 이야기 《에시자, 오시자》를 개최합니다. 첫번째 페스티벌은 삶의 터전이자 감각으로서의 강릉을 기존과는 다른 시선으로 탐색하며, 지정학적 위치를 경험과 기억의 축으로 확장한 새로운 지도를 그려내는 방식으로 기획되었습니다. 두 번째 페스티벌에서는 1913년 강릉김씨 부인의 여정을 기록한 오래된 기행문6 「서유록」을 따라, 신체의 이동이 불러온 물리적·정신적 영향을 조명하며 이동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이번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대관령을 핵심 요소로 삼아 새로운 접근을 시도합니다.
지난 회가 대관령 옛길을 걷는 여정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대관령을 넘나드는 인간 이외의 다양한 존재들에 주목합니다. 바람과 구름, 옛이야기와 기억에 새겨진 풍경들, 산새와 들짐승, 이끼와 야생화, 보이지 않는 미생물, 스치는 눈발과 바람결에 실려오는 먼지, 대지를 어루만지는 그림자와 별빛, 그리고 그곳에서 탄생한 신화와 전설, 설화 등을 걸음의 주체로 전환하며, 축적과 시간을 달리해 대관령을 둘러싼 새로운 관점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대관령의 지표면 가까이에서 마주치는 세밀한 풍경부터 령을 넘으며 펼쳐지는 광활한 전경까지, 그 사이에서 탄생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이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그리고 현재는 어떻게 그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지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대관령의 바람과 그곳을 지켜온 신성한 존재들, 그리고 노래하며 살아온 인간의 이야기7는 천 년 전에도8 ,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존재들은 대관령의 장소적, 정서적 상징성을 다시금 선명히 드러냅니다.
우리는 여전히 대관령의 깊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멀리 떨어진 그곳의 크기와 경계를 상상하며, 그 상상 속에서 령을 넘어온 바람과 인간의 관계를 발견합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빠른 속도가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대관령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때로 산불 같은 재난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은 단오제라는 축제를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삶의 지속성을 만들어갑니다. 이는 자연이 인간의 예측과 통제를 넘어서는 거대한 존재이고 우리는 자연과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일깨워줍니다.
올해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은 대관령의 깊은 주름을 넘어 또 다른 소통의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제안합니다. 대관령을 넘어 불어오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느끼며, 그 지형이 빚어낸 안팎의 깊고 풍성한 이야기를 함께 발견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에시자, 오시자
‘에시자 오시자’는 강릉단오굿에서 악사(양중)가 바라지*를 할 때, 무악연주와 함께 연행하는 구음으로 집단적 에너지를 고조시키는 역할과 동시에 굿의 흐름을 조율하며 장단 변화를 신호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에시자 오시자’라는 구음은 ‘하늘과 땅 위의 모든 존재를 초대한다’라는 뜻을 가진 사설로 해석될 수도 있으며 의미 없는 구음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 페스티벌에서는 구음이 가지고 있는 ‘초대’의 환대적 의미를 확장하여 페스티벌 참여자, 협력자, 관람객 간의 교감을 증진하고, 서로 다른 리듬이 조화를 이루는 장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바라지: 순우리말로 옆에서 돕는다를 뜻한다. 악사는 무가의 춤의 반주, 각종 의식음악을 연주하고, 무당이 무가를 부를 때 추임새를 넣거나 바라지를 하거나 노래를 주고받는 교환창을 한다 .
- 두창구, 『한국 강릉지역의 설화』(국학자료원, 1999) 「74. 국사 서낭신과 강릉 단오제」 중, 241. ↩︎
- 두창구, 『한국 강릉지역의 설화』(국학자료원, 1999) 「41. 대관령 여서낭신」 중, 173. ↩︎
- 이긍익, 『연려실기술』(국역), 이긍익 지음, 민족문화추진회 옮김, 민족문화추진회(1967년) ↩︎
-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 성종 때 지리서 ↩︎
- 성현(成俔), 『속동문선』(1518) 제5권 중 「칠언고시(七言古詩)」, 「등 경포대(登鏡浦臺)」 ↩︎
- 「서유록」은 제2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제목이자 1913년 강릉 김씨가 서쪽으로 다녀온 여행을 기록한 기행문으로 2021년 서울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
- 언어 연구학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존 닐(J.Niles)은 그의 저서에서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는 존재이다”라고 말하면서, 인간을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라고 규정했다. 인간은 원래 이야기하고 싶고, 듣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Niles 2010). Niles, John D., 2010, Homo Narrans: The Poetics and Anthropology of Oral Literature,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 - 고려사 열전에는 935년(태조 18년) 강릉 출신 왕순식이 왕건을 도와 신검을 토벌하러 갈 때 대관령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603년(선조 36년) 허균이 남긴 『성소부부고』에서 강릉사람들이 5월 초하룻날 대령신을 맞이하여 명주(현 강릉)부사에 모신다고 기록했다. 조선시대의 학자 남효온은 『추강선생문집』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강릉에는 매년 봄에 대관령산신제를 지내고 휴식을 취하며 놀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강릉의 역사책인 『임영지』에는 더 자세한 기록이 있는데, “매년 4월 보름이면 강릉관아의 관리들이 무당들과 대관령에 올라가 제사하고 신목을 베어 모시고 마을로 내려온 후, 단오가 되면 무당패가 굿을 한다.” 고 했는데, 그 내용이 오늘날의 단오제 풍경과 비슷하게 쓰여 있다. ↩︎